2008년 11월 14일
장르문학을 읽는 이유
1.
‘아는 이가 무엇인가를 읽고 있으면 사람들은 곁을 지나다가도 한번쯤 들여다보게 마련이다. 뭘 읽고 계세요? SF요. 아하. 공상 과학 소설이요!(이 대목에서 대개는 빙긋이 웃는다.)’(주1) SF가 아닌 타 장르문학이 가지는 인식도 다르지 않다.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추리소설을 탐독합니다라고 했더니 미래의 장인이 복잡한 얼굴 표정을 애써 감추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래, 한때는 그런 것도 다 좋아할 수 있지." 또 다른 애호가 김모씨는 부모님에게 이런 말도 들었다고 한다. "너 이 다음에 커서 사람 죽일래?"’(주2)
이쯤되면 장르를 왜 읽는지 의문이 든다. 사실 간단하다. 장르를 읽는 이유는 소설을 읽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소설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게 될까? 즉 소설은 왜 읽는가? 그것은 소설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미란 말초적인 재미를 포함한 광범위한 어떤 기분을 의미한다. 우리는 보통 소설에서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 이야기와 함께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책을 펴는 순간 우리는 책 속에 들어가 주인공이 되어 곤란한 상황을 맞이하고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혹은 그 세상에 들어가 주위를 둘러보고 세상을 관조하며 살펴보는 관찰자가 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장르문학이 추구하는 바는 주류문학들과 다르지 않다. 이는 어느 점을 부각시키는지 어떤 배경을 통하는지의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렇다면 왜 장르를 쓰는 것일까? 작가들은 ‘과학 소설을 쓴다. 왜냐하면 자신이 얘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가 바로 과학 소설이기 때문이며, 장인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도구를 아는 법이기 때문이다.’(주3) 즉, 장르란 조금 특이한 겉옷이다.

장르문학을 읽는 이유는 별 것 아니다. 장르문학은 재미있다. 그리고 장르문학도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작가들은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하기 위해 장르의 형식으로 써낸다.


2.
뻔한 이야기만 해버렸다. 하지만 장르에 대한 인식을 꺾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실제로 장르를 읽어도 재미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 장르문학을 읽어내기 위한(?) 방법은 뭘까?

(주4)과학 소설은 바보들이 읽는 것이 아니다. 가장 형편없는 과학 소설조차도 격렬한 지적 참여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러한 긴장의 대부분은 정의상 과학 소설이 어딘가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사실이라는 데에서 발생한다. 어딘가 이상한 곳, 아직껏 존재하지 않았고 지금 현재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 과학 소설에 첫발을 들여놓으려면 독자들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을 상상해 내고, 작품 안에 담긴 이정표와 단서들을 이용하여 알지도 못하는 지역을 머리 속에 그리는 급진적인 행위를 수행해야만 한다.


과학 소설에 대한 글이지만 장르문학도 다르지 않다. 장르문학을 읽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고가 현실에 얽매인 상태로는 장르를 읽어낼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일반적인 문학이 사람의 삶과 일련의 현실적인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건이나 인물이 기괴한 작품도 더러 있지만 그 농도는 장르문학에 비해서 옅기만 하다. 즉 장르문학을 읽어냄에 있어서는 세상을 한번 뒤집었다가 다시 구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쿼런틴』을 보자 장르는 하드SF이다. 우주로부터 격리된 태양계 속의 지구를 다루고 있다. 게다가 나노 기술과 대뇌 생리학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정체성이 위협받는 배경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태양계 속의 지구가 격리당할 때의 사회상태가 묘사된다. 또한 대뇌 생리학의 발달로 인해 감정이 마음대로 조절 되며 인위적으로 신념이 유린당하는 현실을 보게 된다. 이런 모든 것들은 소설에서 잘 정의된 세상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다.
『퍼언 연대기』를 보자 장르는 사이언스 판타지다. 우주 어딘가의 행성 퍼언의 용기사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퍼언에는 주기적으로 이웃 행성이 접근하며 포자형태로 유기체를 빨아들이는 균이 쏟아져 내린다. 그래서 용기사가 탄생하였고 그에 의해 중세를 연상시키는 퍼언 행성이 유지되고 있다.

이렇게 개개의 장르문학들을 읽어내려면 상상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몇몇 독자들은 장르문학은 잘 이해가 안 간다고 한다. 왜 재미있는지 모르겠고 뭘 말하고 있는 것인지 난해하다고만 한다. 이는 상상력의 부재일 수도 있지만 여기서 다른 이론을 꺼내본다. SF의 프로토콜 이론이다.

(주5)SF와 주류 문학의 가장 큰 차이는 내용이 아니라 작품을 읽고 쓰는 방식의 차이에서 오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방식”이란 작가이자 평론가인 새뮤얼 R. 딜레이니가 말하는 독서 프로토콜(protocol)'과 같은 개념으로, 해당 텍스트를 읽기에 앞서 작가와 독자들이 이미 갖추고 있는 일종의 마음가짐 내지는 인지적 패턴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것은 SF와 주류 문학, 나아가서는 SF와 그 이외의 비 리얼리즘 문학 사이를 가르는 경계선으로 작용한다.
딜레이니는 “그녀의 세계가 폭발했다(Her world exploded.)” 라는 짧은 문장을 예로 들며 SF독자와 MF(주류문학Mainstream Fiction)독자(물론 이 둘은 양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이의 해석 방식의 차이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영어권의 MF 독자가 아무런 선입견 없이 이 문장을 읽는다면 “도대체 얼마나 격렬한 감정을 경험했길래 세계가 폭발했다고까지 한 것일까”라든지, “왜 이 여자는 이토록 동요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SF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 한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여주인공(그녀가 반드시 인류일 필요는 없다)이 거주하는 행성 내지는 거주지(habitat)-이를테면 우주선-가 실제로 폭발했다고 간주하고, 그 폭발의 원인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딜레이니는 분석한다. 쌍방의 해석이 이토록 차이가 나는 것은 이들이 상이한 독서 프로토콜을 사용해서 텍스트를 읽었기 때문이다. MF와 마찬가지로 SF의 프로토콜은 일부러 학습한다기보다는 일정량의 독서를 통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레 얻어지는 것이며, 통시적인 맥락에서 보면 1세기에 가까운 기간동안 발간된 수만 권, 수십만 권의 ‘SF 소설’에 의해 점진적으로 그 형태(gestalt)를 갖추게 된 일종의 하부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장르문학을 읽는 요령은 자전거를 타는 것이나 말을 배우고 글을 배우는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장르를 읽어냄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장르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요령이 필요한 것이다.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마법을 쓴다니 말도 안 되잖아’가 아니라 그 세계에서는 ‘이름을 불러서 마법을 쓴다니 이름이 중요하군’이다. 혹은 ‘죽은 애인이 살아 돌아온다니 내가 이걸 계속 읽어야 하나’가 아니라 ‘죽은 애인이 살아 돌아오다니 심란 하겠군’이다.
독자는 책을 펴는 순간 주인공과 함께 해야 한다. 그 세계에 가서 살아야한다. 만약 그 세상이 용이 날아다니고 길을 가다가 괴물이 덮치는 세상이라면 그 세상을 이상하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세상에 살던 사람처럼 생각해야 한다. 책 밖에서 구경하지 말고 책 안으로 들어와 살아야 한다. 물론 책을 덮는 순간 현실로 돌아오겠지만 책 속에 살았던 기억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야기 속에 살아보기 위해서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닌가?

혹시 한번 SF/F를 읽어보고 싶다면 일단은 단편을 추천하고 싶다. 단편은 짧고 부담이 적다. 그리고 책 중에서도 쉽고 재미있게 쓰인 것을 추천하고 싶다. 장편이라도 재미있고 쉽게 쓰였으면서 말초적인 재미 말고도 이것저것 많이 챙긴 작품이 많이 있다. 대체로 추리,SF는 한권짜리 장편이 많아서 부담이 덜하다. 판타지의 경우는 대체로 2권 이상의 장편이 많지만 해외 소설의 경우 단편과 1권짜리도 있다. 만만해 보이는 책 하나 쯤 들어서 읽어 봄이 어떠한가.


(주1) 『마니아를 위한 세계 SF 걸작선』/ 홍인기 편역 / 도솔 / p811, 편집 후기: 과학 소설을 읽는 사람들
(주2) 『월간 판타스틱 2007년 10월호』/ (주) 페이퍼하우스 / p255,「울트라맨이이야」/최내현
(주3) Le Guin, Ursula K.(1976), "Science Fiction and Mrs. Brown" in Science Fiction At large, Peter Nicholls, ed., Harper and Row, pp. 15~33
(주4) 주1의 p814 / Card, Orson Scott(1992), "Introduction" in Future on Fire, Tor.
(주5) 무크 『Happy SF 창간호』/ 행복한책읽기 / p17,「현대SF의 진화」/김상훈

추가 링크:
[SF의 프로토콜.]
[SF의 프로토콜 2.]

PS_제가 쓴 글은 없고 남의 명문 훔쳐다 엮었는데 어째 취향이 드러나버리네요. 죄다 SF -_-
by 시노조스 | 2008/11/14 14:25 | Book and idea | 트랙백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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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djccuri at 2008/11/14 14:42
소설책 꽤나 읽었다고 생각하며 살다가, 뒤늦게 장르문학을 접근해보고자 서점을 기웃거려보곤 하는데(그냥 뭐, 세상 두루두루 구경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막막하더라구요. 포스팅 주제에 벗어날지 모르겠지만, 저에겐 정말 큰 도움 되었습니다. 뭘 읽어야할지 모르겠다, 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읽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거군요. 포스팅을 읽고나서, 옆자리의 후배사원에게 일단 기본적이면서도 재미있는 무협 베스트 10을 적어서 제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SF는 조언대로 단편부터~
Commented by 시노조스 at 2008/11/16 02:13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언젠가 SF에서 경이감을 맛보길 기대합니다.
Commented by J H Lee at 2008/11/14 15:54
재미있는 글이군요.

뭐 SF를 즐겨 보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판타지를 읽었고, 요즘은 라이트노벨로 대표되는 아니메풍의 소설을 즐겨 읽습니다.

그리고 이 편식을 어느정도 완화시켜 주는 것이 장르문학지인 판타스틱입니다.

여기서 SF를 접하고 있습니다.

이런걸로 가볍게 시작해 보는건 어떨까 싶습니다. 일단 한권에 다양한 작품이 다양한 장르를 접할 수 있습니다.
Commented by 시노조스 at 2008/11/16 02:15
판타스틱 폐간 위기입니다. =_=;
그리고 판타스틱이 좋긴 한데 연제 중인 작품의 경우는 감질맛이 나더군요. SF라면 단편집을 하나 사는 것도 괜찮습니다.
Commented by 나름대로 at 2008/11/14 16:42
보통 소설에 비해 요구되는 상상력과 이해력, 몰입감이 높다는 면에서 장르문학은 일반문학에서 충족하기 힘든 것들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싯적에는 이 차이를 단순히 우열로 판단했기에, 소수 향유자의 자존심을 내세워 장르문학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장르문학이 일반문학에 비해 무엇이 열등하냐고 일갈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물론 지금은 이런 이분법에서 탈피한지 오래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시노조스 at 2008/11/16 02:16
네, 저도 이제는 장르가 어쨌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나 읽으라지요.
Commented by 취월백랑翠月白狼 at 2008/11/14 17:19
저희집에서는 제가 장르문학 책을 사들고 오면 부모님께서 그러시지요.
'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런거 볼래?'

조선시대에 '괴력난신'을 다룬 글은 금서나 기피해야할 책이었으니..그게 계속 내려오는 걸까요?:-)
Commented by 시노조스 at 2008/11/16 02:17
장르에 대한 인식이 점차 나아지고 있으니 저희가 부모 세대가 될 쯤이면 좋아지겠죠.

아니 대체 몇 년인게지........... -_-;
Commented by 미도리™ at 2008/11/14 22:31
헐!~ 저야 장르문학 애호가라고 자처하고 있지만 그리 많은 작품을 읽어보진 않았답니다.
제가 장르문학을 읽는 이유는 첫째 재미있다. 둘째 일본 장르문학의 경우 사회 문제나
법제도의 허점 등등을 다루고 있어 현실에 대한 잘못된 점을 소설을 통해 볼 수 있다.
셋째, 추리하는 맛이 있다. 넷째, 워낙 책을 좋아해서리....
뭐 이 정도랄까요! ^^
Commented by 시노조스 at 2008/11/16 02:18
네, 좋아하는 책을 읽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읽단 재미도 없는 책을 붙들고 읽기 '위해' 읽는 것 따위는 멋이 안난다고 할까요.
Commented by 필립호빵 at 2008/11/15 19:50
이걸 쓰고 있었군?
-_-)b
Commented by 시노조스 at 2008/11/16 02:18
ㅇㅇ
-_-)b
Commented by 이재율 at 2008/11/17 02:20
수학 증명의 진정한 가치는, 진위 판별이 분명하고, 시간과 공간이 바뀌어도 결코 변하지 아니함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학사에 기록된, 일본 수학자들인 Taniyama와 Shimura의 Elliptic curve에 관련된, 난해한 추측인 Andrew Wiles의 페르마정리 증명은, 우리의 명확한 페르마정리 증명에 비하여, 그 가치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입니다.
Commented by AFHR at 2008/11/17 21:04
공감하는 글입니다 :) 개인적으로 가지는 편견을 하나 더해 보자면, 소위 말하는 '문과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MF의 독자가 될 확률이 더 크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Commented by 시노조스 at 2008/11/18 06:08
아무래도 용어에 익숙하지 않아서 일까요? 혹은 상상력이 부족해서일까요? 아니면 그냥 편견일까요?
SF에 한정지어 생각한다면
우리나라의 경우 과학기술을 상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도구적으로만 보고 있기 때문에 시사나 역사와 같은 급에 두고 따로 배우려고 하지 않지요. 일단 과학이라고 하면 어렵고 짜증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은 아닐지 생각해봤습니다. 여기까지 추측인데 남의 책에서 통찰력을 훔쳐봤습니다.
자세한 것은 http://sino.egloos.com/1003258
Commented by at 2010/06/03 07:26
백날 말해봤자 안 들을 사람들은 안 듣는 게 현실 'ㅅ';
저는 제 주변 사람들이나마 계몽(...뭔 소리여)시키려고 노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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